Book Review

[2016/07/01]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반부)

The uprooted 2016. 7. 11. 15:53

'도저히'까지는 아니지만 오래 붙잡고 있는 것만큼 짬이 나지 않아 쓰는 반쪽짜리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반부)"

1.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은 것은 17살 때였다. 한국의 독자들이 그를 접하게 된 소설은 세대별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세대, '(노르웨이의 숲이 아닌) 상실의 시대' 세대, '해변의 카프카' 세대, '1Q84'세대, '(상실의 시대가 아닌) 노르웨이의 숲' 세대.

2.
나는 상실의 시대 세대였다. 그 당시까지 내가 읽었던 책들 중 (이것이 여전히 기억하는 정확한 느낌인데) 두번째로 가장 야-한 책으로써 접했다.

3.
(첫번째는 '소설 김삿갓'이었다.)

4.
독자들이 그의 글을 읽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몇 안 되는 작가이지만, 그래도 하루키의 글을 꽤 읽은 편인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5.
35년 간 소설가란 직업으로 살아오면서, 꽤 외로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6.
멋진 글이 많다. 아래는 간신히 몇 개만 추려 발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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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바 장르적 ‘논픽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문자 그대로 ‘비픽션’이라고 할까. 요컨대 ‘픽션이 아닌 작품’을 써보려고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아마 ‘논픽션’이라는 ‘성역’의 파수꾼 호랑이들의 꼬리를 밟아버린 모양입니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애초에 논픽션에 ‘고유한 작성법’이 있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처럼 어떤 일이든 전문이 아닌 쪽에 손을 대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단 달가운 얼굴은 하지 않습니다. 백혈구가 체내의 이물질을 배제하려고 하듯이 접근을 거부하려고 듭니다. 그래도 위축되지 않고 끈질기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차츰 ‘에이,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묵인하고 동석을 허락해주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상당히 반발이 심합니다. ‘그 분야’가 좁을수록, 전문적일수록, 그리고 권위적일수록,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배타성도 강하고 거기서 날아오는 저항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눈대중에 지나지 않지만, 습관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예 서적을 읽는 층은 일본 전체 인구의 핵이라고 할 5퍼센트입니다. 요즘 책에 무관심하다, 활자에 무관심하다, 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5퍼센트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처럼 탄압을 피해 숲에 숨어 모두 함께 책을 암기한다-라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몰래 숨어 어디에선가 책을 읽지 않을까요. 물론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가까이에 유투브가 있건 3D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혹은 틈이 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책을 손에 듭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 -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흔해빠진 대답이라서 죄송하지만, 이건 역시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빠뜨릴 수 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게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달걀을 깨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당연한 얘기지요. 특히 젋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실제로 문장을 써보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순위로 보자면 그건 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만약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 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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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나이 서른에 첫 소설을 썼다.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장 크게 위안을 얻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