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0]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취미, 밥벌이에 이은 전공 관련 서평.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1.
팀 동기에게 설레는 책으로 받고 한참만에 읽었다. 대학 때 생물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요새 읽은 책들 중엔 그나마 전공에 가까운 책. 어려웠다 사실.
2.
사회생물학. (생물인류학, 진화심리학 등과 그 주제의 폭은 같이 한다고 봐도 될 듯.) 그 연구 정도와 사회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성과에 비해 엄청나게 욕 먹는 학문 중에 하나다. 이 책은 그 '비난'들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인데 사실 너무 조목조목 파고 들어서 내용은 충실하나 정작 그 '반대편의 이들'에게 잘 읽히지 않을 것 같다. 2001년에 나온 책인데 올해야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3.
한국에서는 이 분야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인식될 것 같은데(사실 정확히는 분야가 좀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한 오해도 저자는 길게 적었다.) 한국 사회 역시 사회생물학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하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정도와 비례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역설적인 것은 그럼에도 '이기적 유전자'는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4.
오해든 비난이든 논리적 반박이든, 이 분야에 대한 반대의 기저들은 꽤 많은데 대강 떠오르는 것은 아래와 같다. 1) 진화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척되는 종교적 이유, 2) 자연선택과 결정론에 대한 거부감, 3) 우생학적 도구로 활용한 나치의 연상, 4)자본주의 정신으로 비견되기도 하는, 성공에서 실패를 걸러내는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 5) 동물 아니 심지어 곤충들을 예로 인간 사회에 적용하려 했다는 점, 6) 비슷한 지점에서 인간 고유의 인지 능력과 문화를 유전자로 치환해 버리려하는 점, 7) 그리고 심지어 주변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개체들로 인간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는점(이 점은 흥미롭게도 문화인류학이 받는 비판 지점과 비슷하다.), 8) 그 놈의 혈액형처럼 남녀 간의 문제에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등.
5.
책은 위의 내용들에 대해 다소(?) 억울함을 표방하는데 요는 그렇다. 본인들은 과학적 연구결과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데 그에 대한 비난들은 대부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본인들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결정론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도.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좀 공감되는 바가 있다.
6.
돈 많고 잘 생긴 사람이 '반드시' 남들보다 소위 성공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 가능성은 높다. 부의 분배나 외모에 따른 차별 방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제도가 마련되고 사회문화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가능성'을 사회가 이미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사회생물학이 인간사회의 우열을 가르는 결정론적 주장을 펴지 않는 이상(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도 아니다.) 그들이 비난에 대응할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연구에 몰두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은 것 같다. 이미 인간사회는 굉장히 넓은 사회생물학적 인식을 토대로 돌아가고 있다. (정확히는 그 학문과 상관없이 그렇다.)
7.
사실 위의 결정론적 입장에 대한 비난은 이를 과도하게 (그리고 비과학적으로) 써먹으려 했던 사회과학자들에게 가해져야 한다. 사회생물학이 결정론, 비관주의, 회의주의인양 취급된 것은 그들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또 일정부분은 이를 과도하게 흥미 위주로 소개하고(특히 짝 선택이나 강간, 혼외정사 등등 성적 주제로) 활용한 일부 비전문가들의 잘못이기도 하다.
8.
(조금 다른 이야기로) 위험하다고 보긴 그렇지만 좀 과도하다고 보는 심리학적 맹신의 대표적인 예는 혈액형인데, 시작이야 일본의 가십거리였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이건 하나의 신앙과도 같다. 심지어 이게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것 조차 아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나타난다. 사회생물학자라면 진짜 B형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도록 하는 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미 부정된 사실이기도 하고.) 오히려 이러한 맹신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간의 대척구도를 어떻게 만들고 이 믿음방식이 어떠한 과정으로 후대에 영향을 미치게 할 지에 더 흥미를 느낄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라면 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혈액형을 믿으려 하고 심지어 자기 실현/예언적으로 그렇게 '되려' 하며 그로 인해 어떠한 사회문화적 결과물을 낳게 될 것인지 연구할 것이다. 여튼 그렇다는 것.
9.
사실 세상이 과학적으로 돌아간다고 쳐도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은 과학적이기 힘들다. 어렵고 재미없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 과학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귀납적이기 때문에 늘 반증가능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한 공격이 비과학적으로 이루어질 때 과학적으로 대응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책은 사회생물학의 승리, 라 적고 있지만 진짜 그랬다면 이렇게 구구절절 책을 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결론 : 형편이 좀 괜찮았고, 군대를 일찍 다녀오고, 학부를 일찍 졸업하고, 공부를 계속 했다면, 나는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못 그랬을 것 같다. 재능도 열정도 이제와서 보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고. 근데 좀 아쉽긴 하다. 과거에 대한 if not 형태의 가정은 현실에서 술안주 이외엔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