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2]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비바람 몰아치는 토요일, 주중에 읽고 주말에 쓰는 서평.
"원종우(딴지일보 파토),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1.
오랜만에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었다. 세계사를 다룬 여느 책과는 조금 달리, 일단 구성이 신선하다. 정사를 에두른 야사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핵심적인 사건과 그 배경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전후 역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서술하면서, '배운 그대로' 외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달리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며칠 걸려 읽은 보람이 있었다.
2.
국회의원 재보선이 (예상대로? 허무하게? 어처구니없이?) 끝났는데, 그에 대해 적힌 글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 않는다. 동작을에서의 나경원 당선, 같은 선거구에서 김종철이 획득한 (나경원, 노회찬의 표차 보다 약간 더 많은) 1000여표, 소선거구제 이후 전남에서 처음 당선이 된 새누리당의 후보, 김한길/안철수의 동반사퇴, 손학규의 정계은퇴, 결정적으로 여당 11/야당 4라는 결과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아니면 진짜 선거 따위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든지) 등등. 논의될 만한 것이 꽤 많은 선거였는데, 페북에서 보이는 글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은 역시나 최악', '손학규라는 인간의 정계은퇴에 대한 아쉬움' 류의 글이 다 였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은 유병언 시신을 둘러싼 호러허무무비로 절정을 찍는 듯 하더니 그나마도 이제 거의 회자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거나 언급하지 않는 시간들은 역사에서도 잊혀진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21세기 초의 한국 역사라 부를 만한 것이 남아있긴 할까. 사람들이 자꾸 잊어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기억을 강조할 수밖에 없어지고, 그런 기억은 암기가 된다. 암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은 자꾸 흐른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데 (애초에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재밌거나 흥미로운 행위도 아니다.) 뭔가 변할 가능성은 당연히도 생겨날리 없다.
3.
우리나라 안이 아니라, 세계로 시각을 돌려보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이 벌어지고 있다.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짓을 그들은 또다시 저지르고 있다. (책 내용 중 이에 대한 세계사적 배경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매일 밤 폭탄이 떨어지는 공간에서 숨을 쉬는 기분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7월 23일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스라일 가자지구 공격 조사 결의안' 투표가 있었는데 반대표는 하나(미국)였고, 대부분의 서구 국가는 '기권'했다. 한국 역시 기권.) 얼마나 죽어야 끝이 날까. 죽어서 끝날 일이 아닐 것 같다. (관련 글 : http://www.hani.co.kr/arti/opinion/
4.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책을 읽는 행위는 '진지 빠는 짓'이라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본적이 있다. (http://www.mt.co.kr/view/
책을 읽는 사람들은, '기계의 화면'으로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 좀 있는 것 같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어차피 '읽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리 편한 시스템과 기술과 도구가 제공되어도, 안 읽는 사람들은 안 읽는다. 한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기사에 나온 것처럼) '강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강요된 행위는 당연히도 그 강요를 벗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읽기'의 쇠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쓰는' 글의 쇠퇴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40살이 넘고 나면, 온/오프를 아우르는 출판사..를 차리고 싶은게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현실적인 꿈에 가까운데, 생각해보니 가장 비현실적인 꿈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열렬하게 사랑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은 것들 중 하나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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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몇몇 부분.
P.130
선과 악을 일도양단해서 구별하려는 경향은 전근대적인 관점이다. 인간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중용을 좇아 균형을 취해 나가는 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에 의한 그릇된 선의 신념은 스스로의 중요성과 성취에 대한 과장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이런 유아적인 도취는 냉엄한 현실에 마주쳐 스스로가 야기한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극복될 수 있는데 이는 개인, 종족, 문명, 국가 차원에 함께 적용되는 진리다.
p131.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문명은 저열하다. 서로 간에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양보로 조정하지 못하는 문명은 천박하다. 그러나 소화하지 못하거나 조정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총칼을 앞세워 상대를 파괴하려는 문명은 저열함과 천박함에 더해 잔인하고 위험하다. 이런 자들이 강력한 폭력의 권능을 가졌을 때 인류의 미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p.431
순수악 개념은 철저히 중세적인 것이고,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일도양단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가톨릭 도그마의 접근법이다. 악한 인간과 악한 행동은 존재하지만 그들을 순수한 악으로 단순화해서 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증오와 편견은 우리 인간과 문명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고, 이 감정들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든지 표출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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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좀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