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2014/11/08] 내 이름은 빨강 2
The uprooted
2014. 11. 8. 13:19
서울 출장 2주차 주말 점심에 적는 서평.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2"
0.
2권에서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혀진다. 살인자가 밝혀질 무렵에 이르면, 정작 누가 살인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살인자와 등장인물들의 죽음들은 등장인물들을 엮어내고(+독자를 목격자로 만들어버리고), 이야기가 흘러가게 하는 장치일 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1.
번역된 외국의 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일단 여느 책이 그렇듯 작가와 소설 자체의 매력이 있어야할 뿐더러, 번역자의 능력(언어구사, 이해도, 때로는 적절한 의역까지도)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의 출신 국가와 문화, 역사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부분에서 상대적 으로 좀 익숙한 영미소설이나 일본소설에 비해 (처음으로) 터키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1590년대의 오스만 제국과 당시의 미술화풍이 겪어야했던 역사적 배경에 무지한 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등장인물의 본명이 생각보다 쉽거나 친숙한 예명으로 적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2.
터키는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동/서양의 경계지대에 위치해있다. 한국사람들 중 터키인을 '동양인'으로 상상해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의 끝은 보통 중국, 더 가봤자 인도까지가 아닐까.) 그러나, 그들을 '유럽의 백인'으로 상상해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회색지대'다. '우리보다는' 서양에 가깝지만, 서양의 범주에서 보통 잘 빼먹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오스만 제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거나 적지 않음에도 그 역사를 제대로 배우거나 기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엔 '현재 기준'의 특정한, 고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생각하게 된 한계가 좀 큰 것 같다.)
3.
'신의 시각'에서 '신의 기억'에 가깝게 그리는 것이 훌륭한 미술이라는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적 시각과, '초상화' 라는 아주 개인적인 그리고 풍경화에 있어선 인간이 보고 느끼는 '원근감'을 드러내는 유럽적인 움직임이 이 시대(1590년대) 이 곳(오스만 제국)에서 충돌한다. 술탄의 개인적 성향에서 시작된 사건이지만, 그리고 술탄이 바뀌면서 없었던 것처럼 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대한 큰 흐름은 계속 이어져간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명/청교체기(+천주교 유입시기)에 한국 유학자들이 느꼈던 혼란과 희열, 그리고 좌절과 새로움에 대한 몸부림에서 오늘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았다. 터키가 그러했듯, 우리도 그 변화의 시작이 '우리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 역시 그렇다.
---
읽기 어려웠지만, 읽고난 뒤 재미보단 보람이 있던 소설. 미리 사 둔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 '순수 박물관'은 이번보다 좀 쉽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2"
0.
2권에서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혀진다. 살인자가 밝혀질 무렵에 이르면, 정작 누가 살인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살인자와 등장인물들의 죽음들은 등장인물들을 엮어내고(+독자를 목격자로 만들어버리고), 이야기가 흘러가게 하는 장치일 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1.
번역된 외국의 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일단 여느 책이 그렇듯 작가와 소설 자체의 매력이 있어야할 뿐더러, 번역자의 능력(언어구사, 이해도, 때로는 적절한 의역까지도)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의 출신 국가와 문화, 역사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부분에서 상대적 으로 좀 익숙한 영미소설이나 일본소설에 비해 (처음으로) 터키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1590년대의 오스만 제국과 당시의 미술화풍이 겪어야했던 역사적 배경에 무지한 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등장인물의 본명이 생각보다 쉽거나 친숙한 예명으로 적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2.
터키는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동/서양의 경계지대에 위치해있다. 한국사람들 중 터키인을 '동양인'으로 상상해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의 끝은 보통 중국, 더 가봤자 인도까지가 아닐까.) 그러나, 그들을 '유럽의 백인'으로 상상해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회색지대'다. '우리보다는' 서양에 가깝지만, 서양의 범주에서 보통 잘 빼먹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오스만 제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거나 적지 않음에도 그 역사를 제대로 배우거나 기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엔 '현재 기준'의 특정한, 고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생각하게 된 한계가 좀 큰 것 같다.)
3.
'신의 시각'에서 '신의 기억'에 가깝게 그리는 것이 훌륭한 미술이라는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적 시각과, '초상화' 라는 아주 개인적인 그리고 풍경화에 있어선 인간이 보고 느끼는 '원근감'을 드러내는 유럽적인 움직임이 이 시대(1590년대) 이 곳(오스만 제국)에서 충돌한다. 술탄의 개인적 성향에서 시작된 사건이지만, 그리고 술탄이 바뀌면서 없었던 것처럼 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변화에 대한 큰 흐름은 계속 이어져간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명/청교체기(+천주교 유입시기)에 한국 유학자들이 느꼈던 혼란과 희열, 그리고 좌절과 새로움에 대한 몸부림에서 오늘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았다. 터키가 그러했듯, 우리도 그 변화의 시작이 '우리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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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웠지만, 읽고난 뒤 재미보단 보람이 있던 소설. 미리 사 둔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 '순수 박물관'은 이번보다 좀 쉽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