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주의.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
"한강, 채식주의자"
1.
민주주의나 여성주의라는 말이 처음부터 존재했거나 그저 얻어진 단어가 아니듯, 무슨 '주의'라고 부르는 것들은 특정한 방향성을 지녔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것들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시점에 완결되거나 선언될 수 없고,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에 위협적인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경계해야만 경험적으로나마 획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2.
그래서 어렵고, 힘들다.
3.
채식주의, 라는 말 역시 본질적으로 (그것 역시 특정한 주의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치적이지만, 언제부터인지 탈정치적인 단어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너무 진부해서 잘 쓰지 않는... 십여년 전 웰빙이라는 프레임과 만났을 때부터가 아닌가 싶은데, 암튼 현재도 정치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보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후자는 그냥 채식하는 사람이지, 채식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다.)
4.
한강이라는 작가는, 이 단어를 다시 정치적인 영역으로 끌고 왔다. 그것도 '채식주의자'를 넘어, '식물을 지향'하는 주인공을 앞세워서.
5.
맨부커 상 수상 덕분에 2016년이 되어서야 엄청 유명해졌지만, 연작 작품들이 처음 쓰여진 것은 약 10년 전이다. 이 연작소설의 주인공은 '영혜'이기도 하고, (끝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그녀의 언니이기도 한데 이 자매의 삶 모두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그려지기 시작해 그 가정들의 해체와 함께 결말을 맺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그들의 가정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자신들에게서 찾지 않는다. 마치 영혜라는 인물이 변화를 겪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그녀에게 원인을 귀인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와 무관하게 오직 식물이 되기를 지향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세상과 세계관에 좌절을 안긴다.
6.
주인공은 육식을 거부('나는 먹을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하는 것에서 시작해 스스로를 꽃으로 여기기까지 하지만, 이 모두가 외부에 의해 좌절되고 난 뒤 (몽고반점에 등장하는 성행위의 장면은 이 두 세계가 충돌하는 가장 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혜에게 그 상황은 암꽃과 수꽃으로서의 행위이다.), 결국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 버리려고 한다. 세계를 향한 이 극단적인 저항은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녀가 미쳐간다고 느끼게 하지만, 그녀 자신에게 있어 이 모든 행위들은 자기파괴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막는 모든 것들이 그녀를 파괴한다.)
7.
맨부커 상을 타게 한 일등공신으로 여겨지는 작품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작가는 영혜라는 중심인물을 주변 인물들의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영혜에게 극단적인 수동성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작품 안에서 그녀를 설명하는 모든 말들과 프레임은 그녀의 밖에 있다. 작가는 그녀가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한 행위로써 능동성으로 상징되는 '동물'의 것들이 아니라, 가장 '식물'적인 것들을 취하게 했는데, 그것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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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들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읽어나갔지만, 사실 읽고 난 뒤 마음이 편해지는 소설은 아니었다. 짧은 소설에 무거운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역시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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