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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6/07/10]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후반부)

(적고 보니 난잡해졌지만, 원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후반부 서평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후반부)"

0.
어제와 오늘은 더없이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을 굳이 찾지 않고 보냈다. 그런 시간이 사실 자주 주어지진 않는다.

1.
작년 여름-가을무렵부터 다시 스트레스가 심했다. 여러가지 돌파구를 생각해봤고 그 중 몇몇은 실천도 해봤는데 의미가 있었던 것도 재미가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회적인 것들이었다. 소속을 옮기고나서 지난주까지는 약간 오버헤드다 싶을 정도로 달려보기도 했다. 재작년의 경우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어찌보면 개인으로서는 최악이고 문자로 쓰고보니 또 재수없지만) 약간 그런 상태일 때 물리적인 생산성이 높아진다. 정신적으로 긍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눈에 보이는 형태들로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

2.
그저 당장의 밥벌이일 뿐이라고 시작했던 것들이, 그 밥벌이가 일단 삶과 일상이 되고나면 그것들에게 잡아먹히기 쉽다. 원래 그 이전의 나와는 무관했던 것들도 관성이 붙기 시작하면 마치 내 모든 것인양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자잘한 욕심들이 붙는다. 더 잘하고 싶어지고,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야 한다는 자기강박도 생긴다. 그래서 남은 게 차라리 조금더 오른 월급이면 모르겠지만, 더많은 월급들 앞에서 그것조차 초라해진다. 이런 시기가 몇번 왔다가 지나갔는데 무덤덤해졌다 싶으면 또 찾아오고 있다.

3.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래도 좋을 취미가 아닌, 일단 직업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의 무게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떤 것을 생각하고, 행하고, 평가받고, 관계를 맺고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그 자체로 순조롭고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를 '왜 이 정도의 밥벌이 때문에' 라고 또 생각하게 된다. 마치 다른 것을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그걸 시작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즐겁기만 할 것처럼.

4.
모든 '일'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라는 두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표상이나 결과로서의 저 단어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하려고 한다'와 '하지 않으려 한다'와 같은 의지나 상태를 담은 것들이 그렇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이를 지적하는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예를 들면, '쓰고자 하는 나와, 쓰고 있는 나' 혹은 '쓰지 않고 있는 나와 쓰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는 나'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거나 하고 있지 않든, 그 순간을 스스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가 실제의 내 상황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다.

5.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듭니다. 온몸이 긴장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시점에서 자신이 선 위치를 바라보게 되면, 바꿔 말해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뭔가 다른 체계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세계는 좀더 입체성과 유연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건 인간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것을 배운 것은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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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이든 공부 때문이든 스트레스로 인해 독기가 쌓이면, 습관적으로 책을 찾게 된다. 내 나름의 중화작용인 셈인데, 최근엔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책 한 권을 쉽게 읽지 못하고 있다. 하루키의 표현대로, 균형감각이 깨져있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