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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3/04/06] 30일 인문학

일요일에 날씨가 좋아봤자 할 게 이거밖에 없구나, 하며 쓰는 서평

"30일 인문학"

1.
시중에서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보면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결국 인문학도 '팔려야'하는 시대구나 싶으면서도, '팔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어쩌면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이다. 사고 판다, 라는 행위가 주는 (사실 근거도 미약한)부정적 느낌은 어찌보면 인문학을 고립시킨 주범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팔려야 살아남는 시대다. 그렇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던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2. 
제목 앞에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이쯤되면 고상함은 다 내려놓고 아주 인문학을 제대로 팔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 읽고나니 그렇진 않다. 익숙한 공자, 맹자, 장자, 푸코는 물론이고 고진, 아렌트, 데리다, 비트겐슈타인 등등을 언급해가는 걸 보면 대충 '팔려고' 만든 책은 아니다.

3.
직장인 혹은 사회생활을 하든 이들이 한 번 쯤 혹은 거의 매일 겪고 있을 사례를 소개하고 그 뒤에 철학자들의 사유를 가져와 설명하는 것이 주된 구성이다. 이를테면, 대기업에 다니는 동창에게 주눅이 드는 홍과장이야기를 하면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가져오는 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장단이 있다.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에게 자격지심을 갖는 이가 들뢰즈에게 관심이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만남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저자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면 오해의 위험도 있다.

4.
사실 철학은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길러줄 뿐이다. 올바른 문제해결은 올바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질문할 시간이 없다. 질문이 올바른가를 고민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심지어 원전을 읽고 사고의 힘을 기르라는 이야기는 카카오톡을 쓰는 이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기획되었고 어떤 코드로 짜여져서 개발되었는지 원리를 이해하고 사용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카톡을 쓰는 사람이 그저 편하게 쓰면 되듯, 인문학과 철학이 필요한 사람은 좀 더 쉬운 가이드를 활용하면 된다. 코드가 궁금하든 철학자의 원전이 궁금하든 그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런 면에선 나쁘지 않은 책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철학자의 도움을 받아 좀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해결책을 찾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생존 앞에 모든 것은 하위가 된다. 그렇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은 사회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자기가 왜 서글픈지, 적어도 덜 힘드려면 어찌해야 좋을지 '이해하는데'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다. 

6.
김어준 식이라면, '씨바 쫄지 말고, 나한테 묻지 말고, 어렵게 말하지 말고 지금 보스를 입고 싶으면 사 입으라 말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심지어 '보스를 사 입고 싶은 욕망'은 있어도 '살 수 있는 돈' 자체가 없는 사람도 태반이다. '쫄지 말라'는 것은 개인의 '의지'의 영역이지만 '쫄 수밖에 없는' 것은 구조의 문제다. 의지가 언제나 구조를 넘어서게 해 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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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졌지만, 어쨌든 잘 안 읽던 내용을 간만에 접하고, 잘 안 하던 생각도 하게 되고, 이래저래 향수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걸 적고 있는데 동시에 옆자리에서 시끌시끌 욕하고 떠드는 어린친구들을 보니(나이먹나보다-_-)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도 싶다. -_- ㅎㅎ 

날씨가 좋구나.


30일 인문학

저자
이호건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2-22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만약 사표를 쓰기 전에 니체를 만났더라면 당신의 인생은 18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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