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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014/10/04] 당신이 모르는 제주, 첫번째 - 이재수의 난

0. 시작

제주에 산 지 거의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 그 간 가보지 못했던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오늘은 서쪽 지역을 돌았다. 테마는 이재수의 난, 일제의 흔적, 4.3, 추사 김정희로 잡았다. 블로그 첫 포스팅은 그 중 이재수의 난.

오래 전 이정재 주연의 영화로 나온 적이 있는데, 본 기억은 없고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보통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영권의 '제주 역사 기행'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략적인 이야기

이재수의 난은 조선 후기 나타났던 여러 민란 중에서도 규모가 컸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지만) 천주교라는 외래 종교와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좀 특이하다. 크게 3가지 이유를 들면 천주교의 교세 확장, 그에 따른 폐단, 정부의 조세 수탈 등이 원인이었다.

대원군 시기 까지 박해받던 천주교는 1886년 한불수호조약과 1896년 교민조약 이후 선교의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 신부들은 왕이 직접 내린 여야대라는 신표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 사람도 천주교로 개종하면 위와 같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 1899년 천주교가 들어온 이후 2년 뒤에 1300~1400명의 신도가 생겨났다고 한다.)

1897년 광무개혁 이후 대한제국이 된 뒤 지방세를 국세로 전환하는 정책을 펴고 징수관을 파견했다. 그러나 막상 징수관에게는 세금을 징수할 손발이 없었는데 이 때 그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 천주교도들이다. 징수와 관련된 폐단이 누적되자 5월 초 드디어 대정(제주 서남부) 지역 사람들은 상무사라는 조직을 만들고 민회를 개최했다. 그들은 제주읍성으로 찾아가 제주 목사에게 건의문을 제출하는데 이후 천주교도들이 한림에 위치한 민회를 습격하고 초기 장두 오대현을 납치한다. 이후 대정까지 몰려가 총질을 하는데, 지도부 정비가 필요한 이 때 등장한 것이 이재수이다. (앞서 장두 오대현은 향장, 즉 지역의 기득권자였지만 이재수는 관노 출신이었다.)

5월 17일 이재수의 민군은 제주성 밖 황사평에 진을 친다. 이후 지리한 공방전이 벌어지다가 성내에 있던 비천주교도들에 의해 성문이 열렸고 이재수는 관덕정 광장에서 천주교도들을 직접 처형한다. 그러나 6월, 프랑스 군함이 도착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도 합세한다. 이후 민군의 지도부가 체포되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이재수는 1901년 10월 9일 처형된다.

2. 대정현성

이재수 난의 진원지이다. 민회가 최초로 열렸던 곳인데, 현재는 추사 유배지를 두르고 있는 형태로만 남아있다.


3. 삼의사비

지금의 비석은 1997년 새로 세워진 비석이다. 1961년 처음 세워진 비석은 그 앞에 묻혀져 있다. 비문의 첫 문장은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는데 한 때는 천주교도들이 비문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뒷면을 가려 놓았다고 한다.


4. 명월진성

초기 평화적 등소 운동이 무력항쟁으로 바뀐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같은 해 5월 14일 프랑스 선교사를 필두로 800여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을 급습하여 민군을 습격했다.


5. 황사평 천주교 공동묘지

지금은 천주교 공동묘지이지만, 이재수 난 당시에는 명월진성에서 습격당한 이후 천주교도들을 치기 위해 모여든 민군이 주둔했던 장소다. 이후 이재수가 제주읍성에 진입한 뒤 관덕정에서 천주교도들을 처형하게 되는데 관덕정에 방치된 수백명의 시신은 처음에 제주교대 근처 사라봉 밑 언덕에 가매장되었다가 프랑스가 외교 압력을 가하여 제주 목사인 홍종우(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암살한 사람이기도 하다.)가 현재의 묘지로 옮겼다. 초기 묘역 비문에는 신축교난의 한자 중 '난'자가 '수난의 난자'가 아닌 '난동의 난자'로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신축년의 교인들의 난동이 되어버린다.) 이번에 가보니 '신축교안'으로 수정한 흔적이 보였다. (잘 보면, 한글로 된 '안'자가 원래 '난'이었던 흔적도 보인다.)




6. 관덕정 광장

정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데, 날이 어두워져 오늘은 패스. 이재수는 이곳에서 직접 천주교도들을 처형했다. 4.3 항쟁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 사건(3.1절 기념식을 마치고 나오는 해산 군중에 대해 미군정 경찰이 발포한 사건)도 이곳에서 발생했다. 제주 거의 모든 역사에서 등장하는 곳이라 앞으로 더 쓸 일이 생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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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테마는, 일제 시대 군사 흔적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