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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4/06/20] 생각의 좌표

내친 김에 두번째 사회과학, 짧게 쓰기는 실패.

"홍세화, 생각의 좌표"

1.
홍세화에 대한 기억 둘. 첫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그의 첫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읽게 된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해 생각의 방향을 고민하게 했던 맨 처음의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을 말하겠지만, 사실 당시 이 책을 샀던 건 뭔가 동경에 가까웠던 파리 여행기인 줄 알았던 것 + 가고 싶어했던 서울대 외교학과를 그가 졸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리하면, 파리에서 택시 운전 알바를 했던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생의 여행기 정도로...) 그래서 읽었는데, 읽고나선 아주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홍세화의 표현대로라면, '잘못 만난 책'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완전) 빠돌이가 되었다. 이 '생각의 좌표'라는 책은 내가 입대했던 2009년에 처음 나왔는데, 군 제대 후 2년이 지나서야 찾아본 그의 첫 책이다.

2.
두번째는,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을 쪼개어 내는 작업을 그가 함께 했었기 때문인데 그 인연으로 학교 강연회를 주최하고 뒷풀이로 녹두호프에서 같이 술을 마셨던 기억이다. 내가 당신의 첫 책을 사실 파리 여행기인줄 알고 샀다는 이야기, 자신의 딸과 아들이 서로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를 자처하는데 맨날 싸운다는 이야기, 본인은 스스로 투사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 이미지는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김지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던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때로는 질 줄 알면서도 싸울 줄 알아야 한다던 이야기도. 그 땐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가 투사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멋진 아저씨다.

3.
이 책 대부분은, '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적었다. 하단은, 그 중 몇몇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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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정리된 것이든 아니든 세계관과 가치관이 녹아 있는 우리 생각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한국사회구성원인 나의 생각에 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하나에서 만난다. 이 책에서 첫 마디로 제기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돌아볼 것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성찰과 사회 비판이 이 물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편함을 추구한다. 남에게 불편함을 물론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면서까지 나의 편함을 추구한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말은 내 편함의 추구가 남에게 불편함, 고통, 불행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편함을 추구할 뿐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P.16~17
"스피노자가 강조했듯 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사람은 이성적,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사람이 합리적 동물이라면 기존에 고집하던 생각과 모순이 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만나면 자기 생각을 수정해야 마땅하다. (중략)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을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고집할텐데 대체 바뀔 가능성이 없는 나의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라고."

P.29
"우리 학생들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 연대의식을 어쩌다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혼자 이기는 것을 '익힌다'. 우리 학생들은 인권의식에 대해 이따금 배울 뿐이고, 일상에서는 인권 침해를 몸에 익힌다. 우리 학생들은 자유, 평등의 가치를 어쩌다 배우고 일상에서는 억압과 차별을 몸에 익힌다."

P.73~74
"운동권에서 흔히 '의식화'를 말하지만 여기엔 중대한 잘못이 있다. 첫째 잘못은 사회구성원들은 아무런 의식을 갖지 않은 자 혹은 중립적 의식의 소유자인 양 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잘못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가 관철돼 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기득권세력은 기득권세력에 맞는 의식을 가진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가진 게 아니라 기득권세력이 갖도록 요구한 의식을 갖고 있다. (중략) 가령 집안에 병자가 생기면 대다수의 우리 사회구성원들은 병 걱정보다 돈 걱정이 앞선다. 이럴 때 '무상의료'에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존재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상의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혹의 눈길을 보내면서 스스로 거리를 둔다. 기껏해야 '무상교육, 무상의료라... 그거 좋긴 좋은데 그 비용을 어떻게 대나?'라면서 기득권세력의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논의를 끝낸다."

P.82
"복잡하게 얽힌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권력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만약 가능하다면 그 권력은 무척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중과 유리된 진보의식은 사회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으로 권력집착증을 낳기도 한다. 대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어렵고 느리더라도 대중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보하는 진보의식이 요구된다.

P.91
"우리는 정보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겨레를 읽지 않고도 한겨레가 어떤 신문인지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한겨레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다. 사람들은 민주노총에 대해, 전교조에 대해 알고 있을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 '알 필요가 없는 것',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진보정당은 어떤가? (중략)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한다는 것쯤은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알고 있는 게 있다. '접근해선 안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P.113
"회색인들의 회색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검은 목표물'을 색출하여 고발하고 비난하는 데에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주위에 검은 사람이나 세력이 나타났다고 아우성을 친다. 주위의 검정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희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국적 포기 논란과 관련해 애국자들이 갑자기 양산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민족이 없는' 군대가 애국심의 잣대가 되는 모순을 발견하기보다 '나는 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중략) 회색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립'이라는 멋진 수사의 혜택을 입어 양쪽의 권리를 누리며 어느 한쪽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P.178
"내가 생태문제를 고민하는 사회민주주의자로 만족하면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는 것은 오늘 한국사회구성원들이 형성한 의식의 지형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사회구성원들의 정치사회의식과 직접 관련된다. 한국사회구성원들의 절대 다수는 아직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차이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무관심하거나 모르는데도 무언의 합의를 이루고 있는 게 있다.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모두 '사회악'이라는 점, 적어도 '한국사회에 맞지 않다'는 점 대해서는 무언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즉, 모르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반응하는 것이다. (중략) 둘째 이유는 이상사회를 미리 그려놓고 그것을 향해 사회운동을 펼쳐 나가기 보다는 오늘 이 사회의 불평등과 고통과 불행을 덜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 고통과 불행이 없는 해방사회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 저 그림을 놓고 논쟁하고, 그런 사회에 도달할 방안을 놓고 또 논쟁하기보다 지금 이 사회의 불평등과 고통, 그리고 불행을 끊임없이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면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P.192
"20대에 반나치 투쟁에 참여했다고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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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나와 같은 시기에 학생회나 운동의 경험을 가진 많은 이들이 그때의 경험을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뻔뻔한 삶을 살아가고 있거나, 더 어렸던 시절의 연장선에 서 있지 못함에 대한 쑥스러움 혹은 미안함 때문이거나. (물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살면서도 아주 겸손한 -대단한- 친구들도 있다.) 어쨌든, 둘 모두 지금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옳고 그름을 떠나서 둘 다 안타까운 경우다. 나는 어쩌다가 학생회를 하게되었고, 어쩌자고 대학을 6년 반이나 다녔을까. 홍세화가 책에서 지적했듯 '주변사람이나 책을 잘못 만나서' 생각이나 의식의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나는 그 시기가 그랬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엔 그런 '잘못 만난'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꼭 학교 시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 번 잘못 만난 이 아저씨의 책을 30대 직장인이 되어서도 사서 보고 있는 걸 보면, 잘못된 만남의 경우 생각보다 오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잘못 만난'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 같다. 어떻게 해볼까란 뜻은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 그렇고, 아니 외로워서 그렇...


생각의 좌표

저자
홍세화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9-1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홍세화, 한국사회에 대해 입을 열다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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