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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5/07/11]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현실은 한여름 한낮이지만, 초가을 한밤의 환상곡을 들은 느낌.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
명작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망설임없이 추천하고 선물할 수 있는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용의자 X의 헌신'등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만큼 따뜻하고 뭉클한 추리소설이 다시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 번에 읽어갔는데, 몇 번이라고 세기 어려울 정도로 찡한 감정을 느꼈다. 자극적인 소재없이도 사람을 자극시킬 수 있는 힘을, 이 작가는 가지고 있다.

2.
소설에 있어 시공간적 구성은 중요하다. 어떤 시기, 어떤 공간을 설정하는가에 따라 독자의 몰입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시공간적 배경이 등장인물의 삶을 묘사해내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아주 어려웠을 선택을 했다. 33년 전과 현재라는 두가지 시간적 배경을 끊임없이 교차해가면서도 그 시간 사이의 개연성을 , 심지어 논리적인 인과성까지 조금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아마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치밀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다룬 소설, 드라마, 영화는 꽤 있지만 독자가 일부러 고민하고 맞춰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현재-미래를 이어낼 수 있게 했던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3.
시간은 어느 시점에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진다. 그로 인해 텍스트 상에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미래의 사건 사이의 균열을 메워내기가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는 최소한 이 소설 속에선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의문과 모든 궁금증, 사건들이 서로 맺고 있는 인과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질문은 과거에서 오고, 답은 오늘 보낸다'는 장치에서 끝나지 않고, (33년이라는 실제의 물리적인 시간이 지난 뒤) 오늘의 답에 대한 회신을 다시 '오늘' 받게 되기까지의 설정은 짜릿함을 준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간에서도 물음은 가능하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과거에서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에 이를 때엔 (과장아니고 진짜) 소름이 돋았다. 그 물음이 백지였다는 것도, 백지물음에 대한 '나미야'씨의 마지막 답도. 결국, 소설의 시작과 끝이 모두 한 곳에서 시작했다는 것도 모두.

4.
시간을 다루는 것만큼 공간적인 구성 역시 만만치 않다. 등장인물에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도쿄인근의 작은 도시와 연관이 있는데, 모든 공간은 (제목이기도 한) 나미야 잡화점은 물론 환광원이라는 아동복지시설이라는 두가지 지점을 지나 하나의 소실점으로 이어진다. 어떤 방식으로든, 환광원을 거쳐가게 되는 이들은 역시나 나미야 잡화점을 거친다. 그리고, 그 두 공간이 33년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까지도 공간적 치밀함의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한 곳은 누구나 거쳐갈 수 있는, 그러나 점차 쇠락해가는 공간적 느낌을 갖고 있고 다른 한 곳은 누구나 거쳐가진 않는, 그래서 그 공간이 가져오는 결핍의 요소를 부정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설정은 고민, 상담, 편지, 그리고 치유라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의 큰 축으로 자리한다.

5.
고민은 필연적으로 결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상담은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데, 그 수단은 거창할 것도 없는 '편지'다. 고민을 이야기하는 자는 '익명'을, 그에 대한 의견을 회신하는 자는 '실명'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차이가 발신자와 수신자 각자의 진실성을 대변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보통의 상황과 달리 일방적이지 않다. 자신의 편지가 도움이 되었는지, 어떠했는지 묻고자 함으로써 '수신자'였던 나미야씨는 다시 발신자가 된다. 그리고, 그에게 고민을 보내왔던 이들이 이 물음에 답함으로써 그들도 역시 수신자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그것도 편지라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치유해가는 이 과정은, 결코 낯간지럽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되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수많은 독자들을 먹먹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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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잡다한 일용품을 파는 상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목이 과연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