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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3/04/0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비 오는 토요일에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쓰는 서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1.
집을 구하기 전에 민석이네 집에 2주간 있었는데 그 때 민석이와 민석이어머니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여담이지만 -사실 비교도 불가하지만- 내 주변에서 내가 가진 책보다 더 많은 책을 가자고 있는 사람을 본 건 딱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민석이네다. 내가 가진 것의 열 배는 되는 것 같다.) 

2.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말이 소설 전반부에 등장하는데 실제 소설 전체가 몇 번의 에로스와 몇 번의 타나토스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실제의 삶도 복잡하든 단순하든 진실되든 왜곡되든 누구도 이 두가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조금 다르다면 에로스는 기억에 의해 변형되지만 타나토스는 기억을 종료시키는 행위라는 것.

3.
소설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고 끝내는 것도 어렵겠지만 가장 어려운 건 저 둘을 연결짓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진실이 무엇이었고 사랑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다, 를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다소 유치해졌을 것이다. 주인공이 모르는('감을 잡지 못하는') 진실이 결말에 등장하며 끝이 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주된 주제는 사랑이나 죽음이 아니라 '기억'과 '역사'다.

4.
십대가 끝날 무렵의 주인공 친구는 역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60대가 된 주인공이 말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것이 확신이든, 회고든 결국 기억도 역사도 '진실'이나 '사실'의 속성과는 다르다. '믿음'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5.
가장 확실해야 할 오늘, 지금의 순간도 기억과 역사가 되는 그 순간 수많은 가변성을 갖게 된다. 한 개인의 '믿음'과 그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억,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왜곡. 그리고 증거로서의 '사실'에 의해 그 믿음이 깨어질 때 발생하는 기억의 재구성과 역사의 변화. 그 순간 다시 변형되는 믿음과 정당화의 작업. 삶이 대부분 이와 같지 않을까. 좋은 소설로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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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이 걸 쓰는 동안 비가 내렸고, 차가운 카페라떼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씩 마셨다.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두어시간이 흘렀다. 이걸 얼마 간 기억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쓴다. 그러나 이것 자체도 이미 수많은 변형을 거쳤을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저자
줄리언 반스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 2012-03-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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