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 핑계로 새벽까지 버티다가 적는 서평.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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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투가 크게 맘에 드는 편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도(철학, 철학자, 그리고 그들의 글과 생각을 짧게, 쉽게 소개하고자 하는)는 계속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나름 전공자인데 이런 책만 읽게 되는건 스스로 좀 아쉽다. 그러나 또, 내가 대학원을 갔다면 이렇지 않은 책을 계속 읽어야만 하는 것을 견디지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 내 철학 공부는 이도저도 아닌 인문학도 흉내내기로 끝난 듯 하다.
1. 에피쿠로스. 죽음에 대한 논변.
2학년(9..년전) 때 였던가. 철학 전공의 입문 쯤 되는 수업 때, 이 책에서도 소개된 에피쿠로스의 죽음에 대한 논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쾌락주의라는 다소 불경스러운 단어로 스토아 학파와 비교당해야 했던 이름으로만 알던 그였는데, 죽음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정리한 그 내용은 그 간단함만큼 강렬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내가 있을 땐 죽음이 없고, 죽음이 있을 땐 내가 없으니, (죽지 않은 상태의 나는) 죽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고, 또 (죽은 상태의 나는) 죽음을 고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간 어렵게 보면 다음과 같다. 기호논리학으로 생각하면 '존재인 A(나)'와 '상태인 B(죽음)'가 있을 때, A라는 집합(나, 를 정의하는 원소 혹은 명제들로 이루어진)과 B라는 집합(죽음을 정의하는 원소 혹은 명제들로 이루어진)이 공동으로 점유하는 공간(두 집합에 속하는 명제가 함께 존재하는)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나라는 주어와 죽는다라는 서술어는 언어가 가진 특성상 함께 쓰여지고 말해질 수 있을 뿐 현실세계에서 함께 존재할 수는 없다.) 즉, 하나가 존재하지 않아야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모순의 관계에 있는데 둘을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에서부터 '죽음에 대해 불필요한 인간의 헛된 망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B를 객관적인 서술어의 집합으로 보면 '나는 죽는다.', '나는 죽었다.'등의 명제는 충분히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참이 될 수 있는 명제기 때문에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 이 논변에는 약간의 허점(?)도 있다. '죽음'을 나,라는 존재에 귀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상태로 본다는 전제 자체가 참이어야 이 논변이 타당하지만, '나에게 귀속되지 않는'이라는 부분 자체가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에 타당성-참,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문장을 전제로 가졌다는 (어쩌면, 순환논리로 이어지는) 점이다.
그리고 굳이 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현실세계에서 죽음의 주어는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인칭(서술어의 주인이 될 수 없는 나)이나 3인칭(서술어의 주인으로 굳이 고려하지 않는 타인)이 아닌, 2인칭의 거리에 존재하는 이가 주어가 되었을 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 초연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계도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2. 탁오 이지, [속분서]
아마도 일부러는 결코 접해보지 못했을 글을 만나게 한다는 부분이 이런 책들의 장점이기도 할 것 같다. 인용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학부시절을 생각나게 한 글이 있어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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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간단히 적으려고 했는데 내가 지금 이 시간에 페북에 뭐하는 건지. 옛 클럽으로 가자니 좋아요와 댓글이 없고, 페북에 계속 쓰자니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다. 누군가 근데 왜 자꾸 페북에 서평을 쓰냐고 하면 그저 쑥스럽게 웃기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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