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보다 이 시작글 쓰기가 어려움을 고백하며 적는 서평.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
0.
좋은 책이다. 조금 후하게 평을 하자면 대학 6년 반 동안 '사회과학대학생' 으로 배우고 얘기하고 고민했던 거의 모든 내용이 들어있다. '88만원세대'와 같은 제목이 아니라 사회과학도가 아니면 잘 안 읽을 것 같기도 하지만, 겨우 230페이지 가량에 훨씬 본질적이고 많은 내용을 담았다. '88만원세대'에 등장했던 -그리고 사실 다소 허무했던- '짱돌을 들어라.'라는 표현에서 '짱돌 쥐는 법' 쯤 되는 이야기이다.
1.
모든 학문은 무언가에 대한 해석이거나 답인데, 이 둘은 필연적으로 현상과 질문을 전제한다. 누구나 사회 속에 살고 있고,누구나 현상을 마주하고 살아가며, 누구나 질문을 던질 줄 안다.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는 구분은, 주로 방법론의 구사능력 유무로 갈린다. 그런데, 아예 기술전문직이 아닌 사회과학이나 철학은 이 부분에 딜레마가 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또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철학자들의 밥벌이를 고민하며 비철학자가 사용할 수 없는 온갖 용어를 등장시켰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회과학이나 철학의 이론을 친숙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문들이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다 월급 통장으로부터 내가 느끼는 사회가 더 가깝고 차가운 현실이고, 연구대상에 등장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보다 개념없는 내 상사가 보다 구체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은 그곳에 발을 딛고 있는데 도통 학문이란 것은 개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해줄 수 없다.(그러한 시도는 주로 철학관에서 이루어진다.) 이 간극을 메워줄 무언가가 좀 있어야하는데 우석훈은 그래도 그 '무언가'를 생산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3.
좌파, 우파를 떠나 사회과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치고(어쩌면 학문이나 정치의 영역이 아니어도) '소통'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은 이는 없다. 저자는 이를 두고 소통이라 쓰고 홍보로 읽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보통 소통을 언급하는 이는 '나'고, 내 말을 이해해줘야 할 사람은 '너'다. 객체는 없고 주체만 가득한 상황인데, 이 싸움은 보통 힘 있는 자들의 우쭐거림과 힘 없는 이들의 비아냥으로 끝나고 만다. 이게 반복되면 일단 듣고 있던 사람들도 좀 피로하게 만든다. (우린 정치적인 피로도가 너무 누적된 사회고.)
그래서 저자는 보다 현실적인 '도발'을 한다. 착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말고 똑똑해지는 것을 바라자고. 88만원을 받는 이들이 새누리당을 찍어주는 건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는 말인데, 내가 볼 땐 이 말이 그가 가장 세게 던진 짱돌에 가깝다.
4.
저자는 맑스주의자들의 최대 약점이자 오점이 균질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것들을 깨뜨리려 하면서, 똑같은 균질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균질적인 공격에 비균질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있는대로 가자, 라는 말은 쉽지만 지금 없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지키는 자의 욕망은 하나로 수렴하지만, 갖고자 하는 자의 욕망은 제각기 발산한다. 그리고 보통 전자의 경우가 소수고 후자가 다수다. 숫자 때문에라도 전자에 비해 후자는 균질성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균질성만을 주장한다면, 누가 이길지 뻔하다.
5.
개별적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그 선택을 바탕에 두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움을 바라는 이들이 억지스러운 균질성을 주장하는 우는 없어야 한다. 오히려 이는 보수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그냥 자기들이 아니면 '종북좌파'로 이름 붙인다. 그게 쉽고 단순하고 무식하게 잘 먹히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 비균질적인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면에서 짱돌을 던져야 그나마 좀 틈이 생기지 않을까.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금의 문제는 균질성을 가진 단 하나의 집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비균질적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그 방향들도 너무 적다는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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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으로 된 간단한 시험을 쳐야하지만) 회사에서 제휴맺은 곳에서 책을 매월 2권 정도 선택해 받아볼 수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받았다. 요새 읽는 대부분의 인문학이나 미학 책들도 사지 않고 (+ 매월 1권의 설레는 책까지) 그렇게 보고 있다. 사실 이런 책들 보라고 제휴 맺은게 아닐 것 같지만. ㅎㅎ (변희재라면 또 종북좌파다음퇴출이라고 트위터하려나. 아, 나같은 건 안 쳐주려나..)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
0.
좋은 책이다. 조금 후하게 평을 하자면 대학 6년 반 동안 '사회과학대학생' 으로 배우고 얘기하고 고민했던 거의 모든 내용이 들어있다. '88만원세대'와 같은 제목이 아니라 사회과학도가 아니면 잘 안 읽을 것 같기도 하지만, 겨우 230페이지 가량에 훨씬 본질적이고 많은 내용을 담았다. '88만원세대'에 등장했던 -그리고 사실 다소 허무했던- '짱돌을 들어라.'라는 표현에서 '짱돌 쥐는 법' 쯤 되는 이야기이다.
1.
모든 학문은 무언가에 대한 해석이거나 답인데, 이 둘은 필연적으로 현상과 질문을 전제한다. 누구나 사회 속에 살고 있고,누구나 현상을 마주하고 살아가며, 누구나 질문을 던질 줄 안다.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는 구분은, 주로 방법론의 구사능력 유무로 갈린다. 그런데, 아예 기술전문직이 아닌 사회과학이나 철학은 이 부분에 딜레마가 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또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철학자들의 밥벌이를 고민하며 비철학자가 사용할 수 없는 온갖 용어를 등장시켰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회과학이나 철학의 이론을 친숙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문들이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다 월급 통장으로부터 내가 느끼는 사회가 더 가깝고 차가운 현실이고, 연구대상에 등장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보다 개념없는 내 상사가 보다 구체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은 그곳에 발을 딛고 있는데 도통 학문이란 것은 개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해줄 수 없다.(그러한 시도는 주로 철학관에서 이루어진다.) 이 간극을 메워줄 무언가가 좀 있어야하는데 우석훈은 그래도 그 '무언가'를 생산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3.
좌파, 우파를 떠나 사회과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치고(어쩌면 학문이나 정치의 영역이 아니어도) '소통'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은 이는 없다. 저자는 이를 두고 소통이라 쓰고 홍보로 읽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보통 소통을 언급하는 이는 '나'고, 내 말을 이해해줘야 할 사람은 '너'다. 객체는 없고 주체만 가득한 상황인데, 이 싸움은 보통 힘 있는 자들의 우쭐거림과 힘 없는 이들의 비아냥으로 끝나고 만다. 이게 반복되면 일단 듣고 있던 사람들도 좀 피로하게 만든다. (우린 정치적인 피로도가 너무 누적된 사회고.)
그래서 저자는 보다 현실적인 '도발'을 한다. 착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말고 똑똑해지는 것을 바라자고. 88만원을 받는 이들이 새누리당을 찍어주는 건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는 말인데, 내가 볼 땐 이 말이 그가 가장 세게 던진 짱돌에 가깝다.
4.
저자는 맑스주의자들의 최대 약점이자 오점이 균질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것들을 깨뜨리려 하면서, 똑같은 균질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균질적인 공격에 비균질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있는대로 가자, 라는 말은 쉽지만 지금 없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지키는 자의 욕망은 하나로 수렴하지만, 갖고자 하는 자의 욕망은 제각기 발산한다. 그리고 보통 전자의 경우가 소수고 후자가 다수다. 숫자 때문에라도 전자에 비해 후자는 균질성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균질성만을 주장한다면, 누가 이길지 뻔하다.
5.
개별적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그 선택을 바탕에 두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움을 바라는 이들이 억지스러운 균질성을 주장하는 우는 없어야 한다. 오히려 이는 보수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그냥 자기들이 아니면 '종북좌파'로 이름 붙인다. 그게 쉽고 단순하고 무식하게 잘 먹히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 비균질적인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면에서 짱돌을 던져야 그나마 좀 틈이 생기지 않을까.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금의 문제는 균질성을 가진 단 하나의 집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비균질적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그 방향들도 너무 적다는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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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으로 된 간단한 시험을 쳐야하지만) 회사에서 제휴맺은 곳에서 책을 매월 2권 정도 선택해 받아볼 수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받았다. 요새 읽는 대부분의 인문학이나 미학 책들도 사지 않고 (+ 매월 1권의 설레는 책까지) 그렇게 보고 있다. 사실 이런 책들 보라고 제휴 맺은게 아닐 것 같지만. ㅎㅎ (변희재라면 또 종북좌파다음퇴출이라고 트위터하려나. 아, 나같은 건 안 쳐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