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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2013/11/09] The Job

타인을 분류하는 가장 쉬운 기준이며, 꿈이거나 밥벌이거나. 혹은 둘 다 거나, 둘 다 아니거나.

"더글라스 케네디, The Job"

0.
타인에게 꿈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문장이 아닌 단어로 답하게 되는 건 엊그제 수능을 친 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나이 서른의 신입도, 10년차 직장인도, 몇 년 째 학교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타인의 꿈을 들어줄 만큼의 여유를 갖고 살지 못한다. 본인의 꿈이 '한낱' 직업으로 정리되고 이해되는 걸 기분 나빠하면서도, 직업은 타인을 분류하고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된다.

그래서 타인이 나를 분류해낼 때 좀 더 좋은 범주에 속하기 위해,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하고, 대학에서도 준비를 하고, 심지어 직장인이라는 'job'을 획득하고 나서도 지속적인 대비를 한다. '꿈이 곧 직업이 되었다.'라는 말은 좀 삭막한 기분을 들게 하지만, 'job'은 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규정하게 된다. 당신의 경제적인 토대는 물론, 사회적인 지위와 평판의 대부분은 슬프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직업'으로 평가되고 정의된다. 

1.
꿈과 밥벌이의 괴리가 큰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job'으로 인해 꿈이 만들어져가는 한 세일즈맨이 있다. 그의 꿈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그 모든 것의 토대는 세일즈라는 '직업'에서 시작된다. 꿈과 직업이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이는 보통 행복한 사람으로 평가되기 마련인데, 그도 그랬다. 그랬던 그였으나 자신이 성공을 이루었고 그렇기에 신봉했던 그 'job'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job'이라는 것도 결국 '만들어진 것'임에도 그걸 본인이 만들어내었다고 착각한 주인공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는 주체가 아니었다는 걸 서서히, 그리고 잔인하게 알게 된다.

2.
'job'은 이 소설의 대부분을 관통하는 핵심 소재고, 주제다. 주인공이 전반부에 'job'에 만족하며 살던 시기, 그리고 그것을 잃어가는 과정, 그리고 생존을 위해 다시 'job'의 세계로 들어가 더 큰 위험을 겪게 되는 것까지 주인공은 늘 끌려다닌다. 광고주를 설득해 잡지에 광고를 실어야만 하는 을의 입장에서도, 그 을의 자격조차 상실했을 때도, 살아남기 위해 (당시에는 몰랐던 위험과 함께) 다시 'job'의 세계로 뛰어들때도. 

그랬던 그가,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job'을 거부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 생존을 위해 선택을 '강요'당했던 그가 처음으로 선택을 '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소설이 가진 역설이 있다. 소설은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지만, 삶은 계속 쓰여지게 된다. 현재진행형의 공간에서 이런 결말은 존재하기 어렵다. 물론, 그래서 소설이 아직 읽히는 것이겠지만.

3.
더글라스 케네디는 평범한 한 개인이 아주 극단적인 경험을 어떻게 겪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 같다. 빅픽쳐, 역시 비슷한 구조로 흘러가는 내용이었는데 전개가 빠르고, '리얼'하다. 소설의 배경은 1998년이지만, 세일즈의 세계를 적은 부분은 2013년의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을 이야기일 듯 싶다. 재밌게 읽었는데 어째 기분이 묘하다. 나도 직장인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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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치고 좀 두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책. 다만, 소설이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들어올 때 느끼게 되는 약간의 불편함이 좀 있다.


더 잡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출판사
밝은세상 | 2013-08-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 비즈니스세계는 정글,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전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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