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한 권 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1.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에 태어나, 1979년 (그러니까, 서른 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상을 받으며 등장했다. 당시 수상소감에서 '마흔 살이 되면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있겠지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 후 8년 뒤 서른 여덟, '노르웨이의 숲'(한국명 '상실의 시대')를 내놓았다. 2014년, 그는 지금 66세이다.
2.
제대 전 그러니까 최소 2~3년 전 사두고는, 워낙에 두꺼워서 (심지어 소설도 아니고 거의 에세이) 몇 년이 그냥 지났는데, 이걸 모슬포 예비군 훈련장에서 읽게 될 줄이야. (까막눈이, 한 권만 들고 온 걸 후회했다.) 그래도 여기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3.
에세이의 하루키는, 소설의 하루키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소설로는 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에세이들에선 동네 옆집 아저씨의 느낌이 물씬난다. 그가 소설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음악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음악 관련한 (상당한 양의) 에세이들은, 초보자에겐 어렵고 생소할 지경이었다. 어찌되었건, 대학 시절 결혼을 하고 소설을 쓸 생각도 전혀 없었고 조직생활은 심지어 싫어서 재즈카페를 차려버렸던 이십대 중반의 하루키는,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있겠다 싶었던 소설을 35년 넘게 쓰고 있는, '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그리고 '꽤 괜찮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아래는, 몇몇 문장 발췌.
---
P.19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 건네주는 데 있다."
P.88 (가까운 지인 딸의 결혼식 축사)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P.91 (비판을 많이 받았던, 예루살렘상 수상식에 참석해서)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 이 문구 이외에도 나머지 말들 역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P.129 (노르웨이의 숲 제목을 두고 벌어진 일화 중)
비틀즈 앨범에 수록된 norwegian wood의 해석을 두고, 이 말이 사실은 노르웨이식 가구, 즉 북유럽풍 가구를 뜻한다는 반박이 있었다. 사전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로는 둘 다 가능한데 아래의 (존 레논에게 직접 들었다는 미국인이 이야기한) '설'이 가장 그럴듯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 "노르웨이 숲의 원제는 norwegian wood. 사실 원래 가사는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그녀가 해 줄 걸 아니까, 좋지 않아?)" 였고 예상되는 이유로 음반사에서 거부당하자 존 레논이 그 자리에서 비슷한 발음의 norweigian wood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P.196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라는1930년대 후반 미국 노래 중)
I've flown around the world in a plane.
I've settled revolutions in Spain.
And the North pole I have charted.
Bur can't get started with you.
P.206-212 (재즈는 어떤 음악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 -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 기분이었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하루키는 이것이 본인이 겪은 '실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P.459 (프란츠 카프카상 수상하면서 인용한 '1904년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생각건대, 우리는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
---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1.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에 태어나, 1979년 (그러니까, 서른 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상을 받으며 등장했다. 당시 수상소감에서 '마흔 살이 되면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있겠지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 후 8년 뒤 서른 여덟, '노르웨이의 숲'(한국명 '상실의 시대')를 내놓았다. 2014년, 그는 지금 66세이다.
2.
제대 전 그러니까 최소 2~3년 전 사두고는, 워낙에 두꺼워서 (심지어 소설도 아니고 거의 에세이) 몇 년이 그냥 지났는데, 이걸 모슬포 예비군 훈련장에서 읽게 될 줄이야. (까막눈이, 한 권만 들고 온 걸 후회했다.) 그래도 여기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3.
에세이의 하루키는, 소설의 하루키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소설로는 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에세이들에선 동네 옆집 아저씨의 느낌이 물씬난다. 그가 소설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음악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음악 관련한 (상당한 양의) 에세이들은, 초보자에겐 어렵고 생소할 지경이었다. 어찌되었건, 대학 시절 결혼을 하고 소설을 쓸 생각도 전혀 없었고 조직생활은 심지어 싫어서 재즈카페를 차려버렸던 이십대 중반의 하루키는,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있겠다 싶었던 소설을 35년 넘게 쓰고 있는, '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그리고 '꽤 괜찮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아래는, 몇몇 문장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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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 건네주는 데 있다."
P.88 (가까운 지인 딸의 결혼식 축사)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P.91 (비판을 많이 받았던, 예루살렘상 수상식에 참석해서)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 이 문구 이외에도 나머지 말들 역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P.129 (노르웨이의 숲 제목을 두고 벌어진 일화 중)
비틀즈 앨범에 수록된 norwegian wood의 해석을 두고, 이 말이 사실은 노르웨이식 가구, 즉 북유럽풍 가구를 뜻한다는 반박이 있었다. 사전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로는 둘 다 가능한데 아래의 (존 레논에게 직접 들었다는 미국인이 이야기한) '설'이 가장 그럴듯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 "노르웨이 숲의 원제는 norwegian wood. 사실 원래 가사는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그녀가 해 줄 걸 아니까, 좋지 않아?)" 였고 예상되는 이유로 음반사에서 거부당하자 존 레논이 그 자리에서 비슷한 발음의 norweigian wood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P.196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라는1930년대 후반 미국 노래 중)
I've flown around the world in a plane.
I've settled revolutions in Spain.
And the North pole I have charted.
Bur can't get started with you.
P.206-212 (재즈는 어떤 음악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 -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 기분이었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하루키는 이것이 본인이 겪은 '실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P.459 (프란츠 카프카상 수상하면서 인용한 '1904년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생각건대, 우리는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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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간이 남았다.